popup zone

제1회 미당학술상 심사평 - 김춘식 심사위원

등록일 2025-07-11 작성자 관리자 조회 20

제1회 미당학술상 심사평

김춘식 심사위원 | 문학평론가·동국대학교 문과대학장

  

 

제1회 미당학술상 본심 대상 논문들은, 서정주 시인의 시를 새롭게 분석한 작품론, ‘중용’이나 동양의 고전 시학 등 전통 사상과 미학을 시 분석에 적용한 연구, 프로이트 등 정신분석학을 활용한 시인 연구,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을 적용한 연구, 시가 아닌 ‘세계 민화집’이라는 산문을 통해 서정주 시인의 ‘시인 자격’에 대한 생각을 추론하고 분석하는 연구 등 다양한 관점과 접근 방법을 보여준 점이 상당히 이채로웠습니다. 


서정주 시인에 대한 연구는 독립된 연구사 혹은 학술사를 형성할 수 있을 만큼 오랜 시간에 걸쳐서 이미 많은 연구들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관점’과 접근을 통해 완성도 있는 독창적 논문을 쓰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 점에서 이번 학술상 심사의 대상이 된 논문들 또한 기존 연구 성과를 섭렵한 위에서 ‘새로운 연구 성과’를 창출해 내야 한다는 부담과 어려운 과정을 겪어낸 흔적이 곳곳에서 확인되었습니다. 한마디로, 깊은 ‘고심(苦心)’의 결과가 응모된 개개의 연구에서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특히, 시 작품에 대한 새로운 분석과 시학적 가치의 발견을 위한 고투는 ‘미지의 영역’을 새롭게 발견하려는 패기와 학문적 도전으로 읽혀서, 심사위원으로 하여금 심사의 과정 자체를 ‘긴장된 사유’에 몰입하게 하는 의미 있는 경험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최종적으로 저는 세 편의 논문에 주목했습니다. 공라현의 「서정주 시에 나타난 뻐꾸기 울음소리 표상 연구」, 신동옥의, 「『질마재 신화』에 나타난 귀향의 의미」, 황경해의 「서정주 시집 『동천』에 나타난 풍격의 고전시학적 특성 연구」 등입니다. 심사위원 자격으로 살펴본 각 논문의 장점과 단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공라현의 연구는 ‘뻐꾸기 울음 소리’ 표상을 중심으로 서정주 시에 나타난 다양한 새의 울음소리의 시적 원체험을 분석한 완성도 높은 논문이었습니다. 하이데거의 사유를 통해서 시적 경험을 몸(감각)과 세계의 섞임 또는 스며듦으로 파악하는 해석은 ‘미학적인 지점과 타자에 대한 윤리적 명제’의 상관성을 밝히고 있는데, 서정주 시의 평가에서 종종 간과되는 시적 윤리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였습니다. 다만, 이 연구에서 아쉬운 점은 하이데거적 사유에 착안한 ‘시적 체험’이 서정주 시의 원체험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실제적인 근거의 설정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하이데거를 해석의 도구로서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현존재’의 ‘세계 내’적 위치가 서정주의 시적 자아에 동일하게 적용되고 ‘부름’ 받는 존재가 되는 ‘장면’ 즉 실제적인 ‘표상’이 제시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표상 연구와 하이데거적 ‘현존’의 사유가 서로 모순되고 충돌한다는 점도 방법론 설정의 큰 결함입니다. 기호론적인 개념을 지닌 표상과 주체 철학적 해석학은 ‘의미’를 규정하는 생각 자체가 서로 상충되기 때문에 동시에 사용하기 어렵습니다. 


신동옥의 연구는 서정주 시의 출발점이자 완결점으로서 『질마재 신화』에 주목한 연구입니다. 이 연구는 ‘기이(奇異)’, ‘습유(拾遺)’, ‘유사(遺事)’의 형태로 『질마재 신화』의 시적 세계를 재구성하고 그 의미를 추적해 나간 점이 특징적입니다. 무엇보다 이런 전제에 맞추어서 개별 작품을 분석하고 시인의 기억의 재구성을 통한 존재론적인 ‘귀향’을 추출해 낸 점은 시 해석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준 성과입니다. 다만, 작품 해석의 과정에서 간혹 비약이 보이는 점, 기이, 습유, 유사의 분류 형식을 가능하게 한 서정주 세계관의 출처나 상호텍스트성의 의미 등 실증적이고 문헌학적인 근거와 검토가 부족한 점, 해석적 방법론 자체를 하이데거나 블로흐 등의 현상학적 사유에서 종종 가져오고 있기 때문에 다소 자의적인 해석과 현상학적 일반화를 취하고 있는 점은 단점으로 보입니다. 


황경해의 연구는 시집 『동천』을 사공도의 『이십사시품』을 준거로 고전시학적인 ‘품평(品評)’을 시도한 점에서 이채롭습니다. 『동천』의 미학이 동양적 정취와 미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동양적 감각과 미감에 바탕을 둔 시적 ‘품평’의 시도는 의미 있는 연구의 시도로 보입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사공도의 『이십사시품』을 적용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도식적인 적용으로 보이는 ‘단순성’입니다. 동양적인 시학과 미적 감성에 대한 이론서 자체가 어느 정도는 현대적인 해석과 개념의 재규정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시 해석’과 ‘품평 용어’의 ‘해석-개념’ 대응은 한문학적 미학의 실험적 적용 이상의 성과로 발전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지니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이 논문의 경우 각주의 형식적 통일, 논문의 약식 각주 사용 방식, 출전의 표시나 레퍼런스의 형식이 덜 정리된 점이 있어 약간의 수정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심사의 과정은 치열했고, 우열을 나누기 어려운 상황에서 본심 위원들의 고민이 깊었지만, 집중된 논의 끝에 최종적으로 신동옥, 황경해 두 분의 연구를 당선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수상한 두 분에게 축하의 말씀을, 그리고 선정되지 못한 분들에게는 이번 응모를 위해 연구에 쏟아부은 열의와 그 학문적 성취에 깊은 경의를 보냅니다. 앞으로 이분들에 의해서 미당 서정주 시 연구가 한층 깊어지고 더욱 높아지리라 기대하며, 심사의 소감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