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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명산 1628개를 다 포개 놓은 높이보다도
시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는 한정 없기만 하다.” _미당 서정주

미당 서정주 시인은 1915년 6월 30일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서 서광한과 김정현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는 서당에서 한문 공부를 했고 1924년 줄포로 이사한 뒤 줄포공립보통학교 6년 과정을 5년 만에 수료했다. 1929년 상경하여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1930년 광주학생 항일운동 1주기 지지 시위 주모자로 구속되었다가 퇴학당했다. 이후 고창고등보통학교에 편입했으나 비밀회합 및 백지동맹 사건으로 권고 자퇴했다.

식민치하라는 한계 상황 속에서 우울과 방랑의 날들을 보내던 미당은 1933년 석전 박한영 대종사의 문하생으로 입문하고, 1935년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에 입학했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김동리·오장환·함형수 등과 함께 시인부락 동인으로 활동했다. 1941년에는 인간의 원죄 의식과 원초적 생명력에 대한 저돌적인 감수성을 보여 주는 첫 시집 화사집을 출간했다.

해방 후에는 동양적 세계에 대한 성찰을 보여 주는 시집 귀촉도(1948)를 펴냈고, 한국전쟁의 참화를 겪고 나서는 정신의 폐허를 생에 대한 긍정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 서정주시선(1956)을 펴냈다. 이후 미당의 관심은 신라정신과 불교에 대한 탐구로 이어져 신라초(1961), 동천(1968)을 출간했으며, 1975년에는 고향마을 질마재를 탁월한 이야기꾼의 목소리로 담아낸 산문시집 질마재 신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회갑 이후 미당의 시 세계에는 언제나 떠돌이 의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는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는 스물세 살 청년의 돌올한 자기 인식이 여전히 유효함을 승인하는 일이었다. ‘떠돌이 시’ 연작 시집인 떠돌이의 시(1976), 늙은 떠돌이의 시(1993), 80소년 떠돌이의 시(1997)와 세계일주 여행의 결과물인 서으로 가는 달처럼…(1980), 세계의 설화에 대한 탐독으로 완성한 산시(1991)가 그 면면이다. 이 밖에도 한국의 역사를 풍류정신으로 재해석한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1982), 점점 사라져가는 현대시의 리듬을 정형률로 승화시킨 노래(1984)와 두 권의 자전 시집 안 잊히는 일들(1983), 팔할이 바람(1988)을 펴내며 왕성한 필력을 보여 주었다.

2000년 12월 24일 영면에 들기까지 미당은 평생토록 만족 없는 탐구를 실천하며 시적 모험을 즐겨 왔다. 68년 동안 시를 쓰며 그가 펴낸 15권의 시집과 1천 편의 시는 이 도저한 탐구 정신에 값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모국어에 대한 남다른 자의식으로 써내려 간 미당의 작품들은 이제 한국문학사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