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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미당학술상 수상 소감 - 황경해

등록일 2025-07-11 작성자 관리자 조회 17

제1회 미당학술상 수상 소감

황경해 | 경화여자EB고 교사·이화여자대학교

 

  

영예로운 상을 주셔서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미당연구소에 감사드립니다. 
도서관 서가에서 평론집의 글을 읽으면서 매우 존경해왔던 이남호 교수님, 논문을 쓰는 동안 윤재웅 총장님(당시는 교수님)의 논문들이 큰 공부가 되었고 연구의 방향과 기틀을 잡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직접 뵙게 되어서 현실감이 들지 않습니다. 


저는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에서 학부, 석사를 마치고 교직을 시작해서 20여 년 근무해왔고, 최근 박사과정에 들어가 공부를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서정주 시인의 『동천』과 ‘풍격(風格)’ 연구 논문은 그 박사과정 2학기에서 4학기에 진행된 것입니다. 훌륭하신 학자분들께서 오랜 세월 연구하시고, 쌓아 올리신 학문적 업적을 바탕으로 미력하게나마 연구를 진척시켜 나갈 수 있었고, 이렇게 영예로운 상을 받게 되어 매우 기쁘고 한편으론 연구 경력이 짧음에도 상을 받게 되어 무거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서정주 시인 연구를 시작할 때 지도교수이신 정끝별 교수님께서 서정주의 산문과 시론을 살피도록 조언을 해주셨고, 현대시 전공 수업 발표를 위해, 20권의 『미당 서정주 전집』을 읽게 되었습니다. 평생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글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문장 하나하나, 책장마다에 스며 있는 삶에 대한 통찰력과 모국어에 대한 깊이 있는 감수성, 사유 방식, 학문의 경지는 저의 언어로는 감히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책에 담긴 서정주 시인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한다면, “모든 항구적인 정서의 종합축적으로서의 예지와 묘법의 경지”이며, “골수를 울리는 힘”을 지닌 언어들이었습니다. 책을 한 권, 한 권 읽을 때마다 제가 조금씩 더 나은 인간이 되어가는 것 같았고, 모국어에 대한 감각과 인식이 새로워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함축미를 강조한 시인답게 무언가를 전달할 때에도 절묘한 함축적 언어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느꼈습니다. 그중에서도 시를 공부하는 저뿐만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한술 더 뜨는 경지”에 대한 시인의 시론이자 학문적 태도입니다. 서정주 시인의 “한술 더”에 함의된 수준에 도달하려면 평생을 다해 정진하고 절차탁마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한술 더”라는 표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풍유적이고 위트 있으면서도, 지극히 높은 경지의 시학과 철학의 개념을 숟가락의 ‘한술’이라는 일상의 쉬운 모국어로 고도의 철학적 시론을 “한술”이라는 한마디로 환치해서 압축해 버리는 절묘한 화법으로 여겨졌습니다. 서정주 시인은 “서양 문학을 공부하되 우리 한국 문학이나 동양 문학의 비교 연구를 통해 정신이나 표현에서 우리가 한술 더 뜨고 있음을 보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난날의 침묵의 무를 찬란한 유로 환원시켜야 한다고 덧붙이셨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서구의 문학과 사상, 당대의 담론들을 신속히 도입하고, 수렴하고 섭렵하는 것에 능하지만, 과거의 가치 있는 우리의 문학적 유산들, 과거의 문학사가 이룬 업적들은 유폐되듯 외면당할 때가 많다고 생각됩니다. 고전문학과 한문학을 공부하면서 여러 감정이 항상 병존하고 교차함을 느꼈습니다. 너무 아름답고 고귀하구나, 라는 감정과 이런 귀한 유산들이 사장되는 것 같은 안타까움, 부지런히 공부해서 전하고 공유하는 것이 사명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동천』과 풍격에 관한 논문 작업은 서정주 시인의 작품들 특히 산문, 시론 속 품격 있는 문장들, 고아한 언어의 집합체에서 발산되는 미감이 조선 시대 한시 비평서인 소화시평, 시평보유, 당송팔대가 등 한문학 작품들의 언어들에서 풍기는 운치와 같은 깊이 있는 격조로서의 울림이라는 느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고전 비평에서 강조하는 운미(韻味)가 풍부하고 행간에서 언외의 자미(滋味)를 느낄 수 있는 풍격의 향기는 제가 분석한 『동천』뿐만 아니라, 서정주 시인의 글 속에 깊이 스며 있다고 생각됩니다. 서정주 시인만큼 동양 미학의 진수인 ‘풍격’의 언어와 품평이 어울리는 현대 시인이 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연구 과정 내내 들었습니다. 


과거의 문화유산에는 시간을 초월해서 빛을 발하는 가치들이 있고 계속 계승해 나가야 하는데 서정주 시인의 표현대로 ‘침묵의 무’ 속에 묻혀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부족하지만, 계속 정진하여 서정주 시인의 말씀대로, 침묵의 무들을 찬란한 유로 환원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습니다. 


저의 개인적 경험에 비춘다면, 고등학교 때 모의고사 지문에서 서정주 시인의 「귀촉도」를 처음 만났을 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과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지금의 비평적 언어로 “미학적 충격”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 같습니다. 「국화 옆에서」, 「무등을 보며」 등을 교과서에서 배울 수 있었던 교육과정이었습니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제가 감동적으로 조우했던 것처럼, 앞으로 모의고사 지문에서 교과서에서 서정주 시인의 작품을 비롯하여 소중한 문학적 가치를 지닌 찬란한 작품들을 만나 감동받고 스스로의 삶을 ‘찬란한 유’로 승화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시 한 번 수상의 영예를 주신 동국대 총장님과, 심사위원님들께, 미당연구소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