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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촉도

등록일 2025-02-11 작성자 관리자 조회 99

 

귀촉도

 

눈물 아롱 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西域 삼만 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신이나 삼어 줄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혀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을로 가신 님아

-귀촉도(1948) 수록

 

귀촉도는 두견 또는 소쩍새라고도 불리며, 밤새 우는 그 울음이 너무 구슬퍼 예로부터 많은 전설을 낳았고 또 많은 시인들이 노래했던 새이다. 이 시도 그러한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씌어진 작품이다. 즉 귀촉도의 울음이 안타깝게 이별한 님을 못 잊는 한 맺힌 마음의 표현이라는 것이 이 시의 발상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노래로 만드는 시인의 탁월한 언어 구사력이다.

이 시를 가만히 읊조리다 보면, 우리는 언어로 만들어진 황홀한 환상의 공간을 체험하게 된다. 7·5조의 운율과 우리말의 말맛을 살려서 이처럼 완벽한 언어 구조물을 만들 수 있는 시인은 서정주 이외에 달리 없을 것이다. 그래서 미당은 ‘부족 방언의 마술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거의 모든 좋은 시가 다 그러하겠지만, 미당의 시는 번역할 수 없는 부분이 아주 크다. 우리말에 대한 깊은 감각을 지닌 자가 아니라면 미당의 시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을 것이다.

이남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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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은 이 시에서 새가 제 피를 다시 삼키는 대신 은핫물로 목을 적신다고 표현했다. 이 대목에서 한 맺히고 억울한 새는 하늘 물로 “아롱 아롱” 제 몸을 헹구며 새로 태어난다. 그 새의 눈물과 강물이 만나는 곳이 곧 은하수다. 강물의 양 끝에 서역과 파촉, 님과 내가 있다. 눈물과 이별의 정한을 한층 높은 차원의 사랑 노래로 승화시키는 이 기막힌 솜씨 앞에서 나는 금세 순한 님이 된다. 소월의 「진달래꽃」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이별을 전제로 한 사랑 노래라면 미당의 「귀촉도」는 “다시 오진 못하는” 기왕의 이별 위에 애틋한 그리움을 녹여 낸 사랑 노래다.

우리말을 이렇게 자유자재로 부리면서 하늘이 내릴 법한 시를 쓰려면 어떤 경지에 올라야 할까. 미당이 이 시를 처음 발표한 나이가 스물여섯 청년이었으니 가히 ‘타고난 시인’이요 ‘천의무봉’이라 할 수밖에. 

고두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