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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25-02-13 작성자 관리자 조회 248

 

 

천년 맺힌 시름을
출렁이는 물살도 없이
고은 강물이 흐르듯
학이 날은다

천년을 보던 눈이
천년을 파다거리던 날개가
또 한번 천애天涯에 맞부딪노나

산 덩어리 같어야 할 분노가
초목도 울려야 할 서름이
저리도 조용히 흐르는구나

보라, 옥빛, 꼭두서니,
보라, 옥빛, 꼭두서니,
누이의 수틀을 보듯
세상은 보자

누이의 어깨 너머
누이의 수틀 속의 꽃밭을 보듯
세상은 보자

울음은 해일
아니면 크나큰 제사와 같이

춤이야 어느 땐들 골라 못 추랴
멍멍히 잦은 목을 제 쭉지에 묻을 바에야
춤이야 어느 술참 땐들 골라 못 추랴

긴모리 자진모리 일렁이는 구름 속을
저, 울음으로도 춤으로도 참음으로도 다하지 못한 것이
어루만지듯 어루만지듯
저승 곁을 날은다

-서정주시선(1956) 수록

 

새 천년이다.
돌아다보면 시의 천년이 숨가쁘게 학의 날갯짓으로 달려왔고 내다보면 더 밝은 시의 천년이 날아오르고 있다. 이 크나큰 시간의 하늘문 앞에서 미당(未堂)의 학을 만난다.

먼 신라로부터 이 나라 정신의 마디마디를 학의 울음으로 터뜨려온 미당, '산 덩어리 같어야 할 분노' 도 '초목도 울려야 할 서름' 도 이제는 학의 춤으로 모두 이겨내고 곱게 피어나는 시의 아침이 우리의 가슴을 열어주고 있다.

이근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