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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등록일 2025-03-21 작성자 관리자 조회 531

 

  무제

 

  오늘 제일 기뿐 것은 고목나무에 푸르므레 봄빛이 드는 거와, 걸어가는 발뿌리에 풀잎사귀들이 희한하게도 돋아나오는 일이다. 또 두어 살쯤 되는 어린것들이 서투른 말을 배우고 이쿠는 것과, 성화聖畵의 애기들과 같은 그런 눈으로 우리들을 빤이 쳐다보는 일이다. 무심코 우리들을 쳐다보는 일이다.

-서정주시선(1956) 수록

 

이 시보다 더 뛰어난 작품이 얼마든지 있지만 나는 그분의 시의 묘하고 그윽한 맛을 이 시를 읽을 무렵부터 겨우 조금 터득한 듯한 생각이 들어 내게는 잊을 수 없는 작품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분의 시에 내 나름의 ‘일등’과 ‘최고’를 인정하게 된 계기가 된 최초의 시였음으로 하여 이 「무제」가 나에게는 그럴 수 없이 중요한 의미를 띤다고 할 수 있다.

그때만 해도 시의 어미 처리가 ‘하여라’, ‘하였네’, ‘하였다’, ‘것이다’, ‘것이여’ 하는 정도로밖에는 달리 새로운 표현을 못 보다가 여기에서 처음으로 ‘일이다’ 하는 것을 맛보게 된 경이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도 수월하고 쉬운 우리말이 있는 것을, 누구도 쓰지 못했다는 것은 기이하기만 했다. (내가 본 ‘일이다’의 어미 처리는 이 시가 최초의 것이었다.)

허두를 떼고 있는 “오늘 제일 기뿐 것은” 하는 언뜻 보기에 따라서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대목은 그분이 실생활어를 가장 멋지게 가장 여유 있게 끌어댄 것으로 보인다. 6·25가 아직도 상처를 남기고 아프게 진행되고 있을 때의 그 당시의 상황 아래에서 내게는 이 대목이 그럴 수 없이 특별히 매력적이고 감동적인 걸로 읽혔다. 이러한 범용한 말이 그렇게도 표현에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은 이 시의 첫째의 비밀인지 모른다.

“제일”이니 “기쁜”이니 하는 손쉬운 말이 어떻게 이렇게 용하게 어울릴 수 있는가에 대하여 나의 직감은 하등의 구애를 받지 않고 혹해질 수 있었던 것이 지금 생각해도 다행이었다고 여기고 있다. 가장 어울리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자리를 찾아 놓여 있다는―시쳇말로 한다면 말이 적재적소를 얻고 있는 사실을 나는 이 시의 허두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거기에다 다시 관형된 “오늘”이란 한 말은 6·25 직후라는 한 시간성 때문에 더욱 내게는 절실하게 배치된 말로 비쳐 왔다.  

박재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