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guk University
어느 날 오후
오후 세시 반
웃는 이 없고,
서천西天엔
한 갈래
배를 깐 구름.
자네, 방 아랫목에서
옛날 하던 그대로
배를 깐 구름. 배를 깐 구름.
하필에 오도 가도 서도 못하고
늘펀히 자빠져서 배를 깐 구름.
-『신라초』(1961) 수록
※
미당시를 대해 오면서 그 표현 언어에서 유난히 두드러지는 색채감을 깨달은 것은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일종 회화적 색채감인데 전세기나 금세기의 모든 미술 조류의 이론과 주장들이 시편들에 골고루 망라되고 있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가령 모네를 필두로 펼쳐지던 인상파의 주장과 기법이 집약적으로 발현되고 있는 것은 「상리과원上里果園」 같은 시편일지 모른다. 여기서는 인상주의가 주장하던 빛, 소리, 햇빛의 변주가 야기하는 온갖 색깔의 범벅과 소용돌이가 고스란히 발현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언어 표현을 회화적 비주얼로 치환해 비교 천착해 보는 것……. 그 후 이 방법은 나에게 미당시를 더 깊이 이해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의 주장에 부합하는 시편들을 살피다가 마주친 시가 「어느 날 오후」다. 대뜸 이 시편에 조응한 것은 시계가 엿가락처럼 늘어져 난간 끝에 걸린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고집〉이란 작품이었다.
달리의 엿가락처럼 늘어진 시계와 여기서의 “배를 깐 구름”이라는 구절의 질감을 나란히 놓고 살피면 이 시편의 불가사의한 장소나 그 윤곽이 더욱 뚜렷해진다. 여기는 장자도 공자의 시공간도 아니다. 일생을 땀 흘리며 살아야 하는 이 나라 백성들이 마지막으로 쟁취하는 어느 순간, 휴식과 해탈의 공간이어서 마치 액화液化한 뇌성벽력을 코앞에서 보는 것처럼 경악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제하 시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