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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의 때

등록일 2025-08-21 작성자 관리자 조회 304

 

의 때

 

석가모니의 조국 네팔 사람들은 
히말라야 산골 물로만 그 몸을 씻을 뿐  
아직도 거이 세숫비누를 쓰지 안 해  
삼삼하게는 고은 때가 산 그림자처럼 끼었다.  

오억 삼천이백만 년쯤을 
하루쯤으로 잡아 살기 마련이라면 
이건  
제절로 그리 되는 아주 썩 좋은 것이라고 한다.  

-서으로 가는 달처럼…(1980) 수록

 

미당의 시 밑바닥을 흐르는 정서 하나는 동심이다. 특히 그의 생애 후반기 작품들 중엔 어린이의 시선이 이야기 꼬투리가 되는 경우가 무척 많다. 주로 기행시나 역사를 제재로 한 시편들에서 시인은 기꺼이 소년이 된다. 극작가 E. 이오네스코처럼 '지금 막 지구에 도착한 외계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눈에 띄는 것마다 놀라울밖에.

이 시가 그렇다. 이 늙은 소년은 "비누를 쓰지" 않고 "물로만 그 몸을 씻"는 산골 사람들의 생활 풍경이 눈물겹도록 반갑고 경이롭다. 소년은 이내 이 드물고 귀한 광경의 비밀을 알아챈다. "석가모니의 조국"이니 어지간히는 티 없는 백성들이겠다는 생각과 오억 삼천이백만 년쯤을 '하루'같이 흘러 내려온 물이란 발견이 그것이다.

어떤 설명에도 흥미를 두지 않고, 아무의 눈치도 살피지 않고 중동을 뚝 분질러 말하는 소년 특유의 화법이다. 평생 익혀온 모놀로그다. 맞춤법 따위 상관하지 않은 지 오래다. 육성의 받아쓰기다. "삼삼하게는 고은 때". "제절로 그리" 된 것이란다. 산 그림자가 그려낸 아득한 시간의 무늬라고 이해하고 싶은 것이다. 이 소년의 나이를 누가 짐작할 수 있으랴.

윤제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