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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일

등록일 2025-09-25 작성자 관리자 조회 444

 

  해일海溢

 

  바닷물이 넘쳐서 개울을 타고 올라와서 삼대 울타리 틈으로 새어 옥수수밭 속을 지나서 마당에 흥건히 고이는 날이 우리 외할머니네 집에는 있었습니다. 이런 날 나는 망둥이 새우 새끼를 거기서 찾노라고 이빨 속까지 너무나 기쁜 종달새 새끼 소리가 다 되어 알발로 낄낄거리며 쫓아다녔습니다만, 항시 누에가 실을 뽑듯이 나만 보면 옛날이야기만 무진장 하시던 외할머니는, 이때에는 웬일인지 한 마디도 말을 않고 벌써 많이 늙은 얼굴이 엷은 노을빛처럼 불그레해져 바다 쪽만 멍하니 넘어다보고 서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왜 그러시는지 나는 아직 미처 몰랐습니다만, 그분이 돌아가신 인제는 그 이유를 간신히 알긴 알 것 같습니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배를 타고 먼 바다로 고기잡이 다니시던 어부로, 내가 생겨나기 전 어느 해 겨울의 모진 바람에 어느 바다에선지 휘말려 빠져 버리곤 영영 돌아오지 못한 채로 있는 것이라 하니, 아마 외할머니는 그 남편의 바닷물이 자기 집 마당에 몰려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렇게 말도 못하고 얼굴만 붉어져 있었던 것이겠지요. 

-질마재 신화(1975) 수록

 

『질마재 신화』는 유려한 탐구 대상이자 광대한 여행지이다. 시인의 고향이지만, 원시의 공간 같기도 하고, 전통적인 마을이지만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미지의 장소로 보이기도 한다.

하여 「해일」을 다시 읽으면, 이 마을에 기상학적인 의미의 해일이라는 사건이 일어나긴 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마을의 울타리와 밭뙈기를 넘어 마당까지 들어온 바닷물, 더는 들이차지 않고 얌전히 고여 있는 바닷물, 새우와 물고기를 잡을 수도 있게 맑은 바닷물…… 그것은 무엇일까. 그리움이 만든 환영이었을까, 신비한 현상이었을까.

시는 언제나 삶을 그리지만, 시는 역시 언제나 삶을 우회한다. 미당은 특히 삶의 전면을 정확하게 전달하기보다는 삶의 뒤편을 까무룩 상상하게 만들기를 택한다. 「해일」이 실려 있는 시집 『질마재 신화』는 삶 뒤편의 삶이라서 진짜 삶이라 할 그것을 갯벌 그득한 해안처럼 부려놓는다. 해안과 가까이 붙은 능선을 그려 놓는다. 해안과 능선이라니, 그곳에 모인 사람이라니, 그들의 삶이라니, 해일이라니, 할머니라니…… 이런 것들이 이야기 안에서 뒤섞여 질서 아닌 질서를 이루는 장면이 미당의 시다.

서효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