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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등록일 2025-11-20 작성자 관리자 조회 292

 

시론詩論

 

바닷속에서 전복따파는 제주해녀도 
제일좋은건 님오시는날 따다주려고 
물속바위에 붙은그대로 남겨둔단다. 
시의전복도 제일좋은건 거기두어라. 
다캐어내고 허전하여서 헤매이리요? 
바다에두고 바다바래여 시인인것을…… 

-떠돌이의 시(1976) 수록

 

1976년에 펴낸 미당의 일곱 번째 시집 『떠돌이의 시』의 맨 첫 자리에 실려 있는 작품이다. 다섯 글자씩 묶어 한 음보를 만들고 세 음보로 한 연을 만든 6행시인데, 이런 형식성을 고려하여 한 음보 안에서는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발표했다. 시의 내용은 아주 단순하고 평이하다.

시의 전복은 시상詩想 혹은 시적 영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제일 좋은 시상은 시로 써서 발표하지 않고 마음속에 그냥 품고 있어야 좋다. 다 써버리거나 취하지 않고 가장 소중한 것을 남몰래 남겨두는 마음의 소중함을 미당은 자신의 시론으로 또 더 나아가 삶의 원리로 삼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런 점에서 시인의 호와 이 시는 잘 어울린다. 미당未堂이라는 호는 서정주의 중앙고보 6년 선배인 미사眉史 배상기 씨가 지어준 것으로, ‘아직 완전함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그래서 늘 성숙과 발전의 가능성 속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서정주는 미당이라는 호를 ‘영원히 소년인 사람’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미당 서정주는 ‘남김의 미학’을 자신의 호에서부터 지니고 있는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남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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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가 삶터일 수 있을까. 삶터를 그리움의 터로 만들 수 있을까. 해녀에게 바다는 새로울 것이 전혀 없이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의 공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일상 속엔 ‘님’을 떠올리게 하는 ‘제일 좋은 전복’이 있다. 아끼고 아껴서 키운 전복 덕분에 따분한 일상의 바다가 설레는 비일상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얼핏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스치기도 한다.

일상의 일터가 여행이나 신화 같은 비일상을 잊지 않도록 시인은 시의 전복, 시의 비의를 성마르게 다 따지 않고 애써 숨겨둘 줄 안다. “바다에 두고 바다 바래여 시인”이라? 아득하다. 일터에 아껴둔 전복 같은 것을 갖고 있다면 지금 여기가 바로 떠나가고 싶은 가장 먼 곳이 될 수도 있겠다.

손택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