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연구소
Dongguk University
무제
종이야 될 테지, 되려면 될 테지
예 울던 대로 높다라히 걸려서
여기 갈림길
네 갈래 갈림길
해도 저물어
땅거미 끼는 제
종이야 될 테지, 되려면 될 테지
깨지면 깨진 대로 얼얼히 울어
자네 속 몰라
애탈 뿐이지
애타다가는
녹아갈 뿐이지
일천 년 자네 집 문지방에 울더라도
종이야 될 테지, 되려면 될 테지
젊어, 성城 둘레
맴돌아 부르다가
금 가건 내려져
시궁소릴 할지라도
종이야 될 테지, 되려면 될 테지
종이야 될 테지, 되려면 될 테지
-『신라초』(1961) 수록
※
시를 향한 걸음마를 막 시작할 무렵, 선생님들은 말씀하셨다. 미당은 귀신이라고. 미당의 시에는 귀기가 서려 있고 그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재능이라고.
텅 빈 종이 위에서 시 한 편만 내어달라 애걸복걸하던 나에게 미당은 이렇게 말했다. 젊은 시인이여, 시는 구걸한다고 오는 게 아니란다. 그러니 따라 해보렴, “종이야 될 테지, 되려면 될 테지”. 시 쓰기는 시인과 종이의 이인삼각 경기와 같단다. 종이보다 앞서 나가도 안 되고 그렇다고 뒤처져서도 안 되지. “되려면 될 테지”의 마음으로 일단 울어. “깨지면 깨진 대로 얼얼히 울어”. 여기서의 핵심은 ‘얼얼히’에 있다네. 맵거나 독해서 아리고 쏘는 느낌, 그것이 얼얼함이지.
얼얼히 울다 보면 저절로 종이 위에 나타나 있는 바로 그것.
점자처럼 돋아져 나온, 존재의 돋을새김으로서의 시.
이것이 내가 읽은 『무제』다.
안희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