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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 오는 달밤 길

등록일 2025-12-08 작성자 관리자 조회 108

 

   서리 오는 달밤 길

 

   어머니가 급병이 나서, 나는 삼십 리 밖에 가서 계시는 아버지한테 알리러 산협 길을 달려갔습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돌아올 때는 맑고 밝은 달빛에 서리가 오는 쓸쓸키만 한 밤이었는데, 어느새 새벽녘인지 먼마을에선 울기 비롯는 교교한 수탉 울음소리도 들려오고 있어, 나는 칩고 외로워서 아버지의 하얀 무명 두루매기 안으로 들어서서 그의 저고리 한쪽 끝을 단단히 움켜잡으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는 또 뛰쳐나와서 땅과 하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두리번거려 보고 듣고 있었습니다.
  “무성한 갈대밭 위로는 문득 몇십 마린가 기러기 한 떼가 끼르릉 끼르릉 하고 그 소리의 종성인 ‘ㆁ’ 소리를 여러 개의 종소리의 여운처럼 울리며 날아가고 있고, 또 내가 걷는 길 밑에 산협 강물은 남실남실 차 있었는데, 아버지는 이걸 “참때로구나” 하셨습니다. 바다에 만조 때가 되어서 그 조류가 산협의 강물을 떠밀며 몇십 리고 거슬러 올라오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 나는 어느새인지 치위도 외로움도 잊고, 이 모든 것의 구성은 아주 좋다는 느낌을 갖게 되어 있었습니다. ‘구성構成’이라는 그런 한자 단어는 아직 몰랐으니까 그런 말을 써서 그런 건 아니지만요.
   그래서, 이날밤 내가 느낀 이 구성은 이 뒤에도 내가 사는 데 한 중한 표준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만큼도 못한 것은 승겁다고요. 

-안 잊히는 일들(1983) 수록

 


어머니가 아프고, 아버지는 멀고, 나는 어리고, 짐짓 타고난 조건만 보자면 당신과 내가 그리 다를 것도 없다 싶은데, 기실 발현된 결과만 두고 보자면 시라 하면서 나는 안 되고 당신은 되는 일이 혹여 내게는 없고 당신에게는 있는 저 “아버지의 하얀 무명 두루매기” 때문이려나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느새인지 치위도 외로움도 잊고” 갖게 된 것이라면 ‘구성’. 얽는다는 말은 왜 이리 사람을 아름답게 조일까요. 이룬다는 말은 왜 이리 사람을 조화롭게 웃길까요. 한 편의 시가 한 권의 시론이고, 한 사람의 스승이고, 한 사람의 연인일 수 있음에 이 시는 오늘까지도 내게 하나의 중요한 ‘표준’이 되어주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김민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