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연구소
Dongguk University
1994년 7월 바이칼 호수를 다녀와서 우리 집 감나무에게 드리는 인사
감나무야 감나무야
잘 있었느냐 감나무야
내가 없는 동안에도
언제나 우리 집 뜰을 지켜
늘 싱싱하고 청청키만 한 내 감나무야.
내가
바이칼 호수를 찾어가 보고 오는 동안에
너는 어느 사이
푸른 땡감들을 주렁주렁 매달었구나!
나는
1742미터 깊이의
이 세상에서 제일 깊고 맑은
호수를 보고 왔는데,
너도 그만큼 한 깊이의 떫은
그 푸른 땡감
그 사이에 맨들어 매달었구나!
내 착한 감나무야.
-『80소년 떠돌이의 시』(1997) 수록
※
미당 선생은 한 ‘영원’의 얼굴을 만나 보려고 무던히도 힘써 온 분이었던 것 같다. 그의 시적 여정은 저 우리 정신의 가장 밑자리 격인 『삼국유사』를 괴나리봇짐 해 짊어지고, 긴 이름들을 가진 세계의 높은 산들을 두루 헤매고 다니는 이미지로 우리 앞에 그려지는 것이다. 그분과 나는 딱 오십 년을 격隔한 사이인데 나는 생전에 꼭 한 번은 그 옆자리에 앉아 있어 보고 싶었다. 한 번 뵙기 전에 미당 선생은 가셨다. 미당 선생 가신 아침에 나는 이런 메모를 남겼다.
항용 우리가 서설瑞雪이라고 부르는, 올해 들어서는 처음 보는 눈이라고 생각하면서 보낸 하룻밤인데, 날 새고 듣는 소식이 미당 선생이 가신 소식이다. 미당 선생 숨 밟고 가시게 내리신 저승의 푸른 종소리였던가? 나는 이렇게 믿는다. 미당 선생은 그저 우리가 늘 지나다닐 수 있는 산길 같은 데서 만날 수 있는 바윗돌이나 큰 나무 뒤에 옷고름 한끝을 내민 채 숨으신 것일 뿐이다. 오늘 저녁 술자리에서 나는 할 수 없이 소주 한 잔은 따로 부었다가 마셔야만 할 모양이다. 그리고 이런 시도 중얼거려 봐야 할 모양이다.
감나무야 감나무야
잘 있었느냐 감나무야
(...)
내 착한 감나무야.
우리 집 내 방 앞에도 마침 감나무가 있으니 이 시는 그대로 내가 가지고 싶은 시다. 참으로 좋은 시는 가지고 싶은 시인 법.
장석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