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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리는 한강가에서

등록일 2026-02-23 작성자 관리자 조회 694

 

풀리는 한강가에서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서름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기러기같이
서리 묻은 섣달의 기러기같이
하늘의 어름짱 가슴으로 깨치며
내 한평생을 울고 가려 했더니

무어라 강물은 다시 풀리어
이 햇빛 이 물결을 내게 주는가

저 멈둘레나 쑥니풀 같은 것들
또 한번 고개 숙여 보라 함인가

황토 언덕
꽃상여
떼과부의 무리들
여기 서서 또 한번 더 바래보라 함인가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서름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서정주시선(1956) 수록

 

얼어붙었던 한강이 풀리는 것을 보는 게 나에게 해마다 감동스러운 것은 서정주의 「풀리는 한강가에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무엇하러 또 풀리는가"로 시작하는 시를 나는 다 욀 수 있지만 특히 "무어라 강물은 다시 풀리어/ 이 햇빛 이 물결을 내게 주는가"에 이르러서는 마음이 떨린다. 굳었던 마음이 떨리고 풀리고 촉촉해지는 느낌이 나에게 온다는 건 봄이 오는 느낌 못지않게 반갑다.

서정주 시인이 생전에 겪은 칭송과 폄하, 영예와 치욕에 동의하여 고개 숙인 적도 침 뱉은 적도 없지만 어느 한 계절도 그의 시를 떠올리지 않은 계절이 없다. 그만큼 자연과 계절의 마음과 통하는 많은 시를 남기셨고, 그런 시들은 그분이 겪은 이승의 영욕을 뛰어넘어 살아남아 사랑받고 있으니 그분의 영혼도 그만하면 족하다고 끄덕끄덕 미소 지으시지 않을까.

박완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