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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대동 시

등록일 2026-02-26 작성자 관리자 조회 455

 

수대동水帶洞

 

흰 무명옷 갈아입고 난 마음
싸늘한 돌담에 기대어 서면
사뭇 숫스러워지는 생각, 고구려에 사는 듯
아스럼 눈 감었든 내 넋의 시골
별 생겨나듯 돌아오는 사투리.

등잔불 벌써 키여지는데……
오랫동안 나는 잘못 살었구나.
샤알 보오드레–르처럼 섧고 괴로운 서울 여자를
아조 아조 인제는 잊어버려,

선왕산 그늘 수대동 14번지
장수강 뻘밭에 소금 구어 먹든
증조할아버지 적 흙으로 지은 집
오매는 남보단 조개를 잘 줍고
아버지는 등짐 설흔 말 졌느니

여기는 바로 십 년 전 옛날
초록 저고리 입었든 금녀, 꽃각시 비녀 하야 웃든 삼월의
금녀, 나와 둘이 있든 곳.

머잖어 봄은 다시 오리니
금녀 동생을 나는 얻으리
눈섭이 검은 금녀 동생
얻어선 새로 수대동 살리.

-화사집(1941) 수록

 

오늘 미당 선생은 태어나신 곳 수대동 마을로 돌아가신다. 젊은 날 나라를 잃은 떠돌이가 되어 멀리 바라보며 한시도 마음속에서 떼어놓을 수 없었던 그 영원한 시의 텃밭으로. 천년, 만년, 울어도 다 풀리지 않은 모국어의 쇠북을 우리의 하늘에 걸어 두시고 이제는 아주 사시러 가신다. 내 뜻도 모르고 마흔 해 넘게 외워왔던 ‘수대동 시’ 한 절을, 시를 가르쳐 주신 스승 가시는 날 눈물로 다시 적는다.

이근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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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해라. 도시적인 것을 잊어버리겠다는 말투는 도시적으로 매우 세련되었다. 도시 문명과는 대척에 있을 서남 사투리들이 미당의 입을 거치면 가장 도시적이 된다.

시골적인 것, 토속적인 것을 그리는 언어의 특출난 도시성, 다시 말해 질박한 것, 수수한 것을 찬양하는 언어의 특출난 세련됨(거의 화사하기까지 하다!)이 미당시를 읽는 즐거움 가운데 큰 것이다. 미당시 가운데 많은 것은 이런 내용과 형식의 팽팽하고 수려한 미학적 긴장으로 터질 듯하다.

「수대동 시」는 『화사집』의 편편이 그러하듯, 한국어의 아름다움의 절정을 보여 준다.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말은 그간 너무 남용돼 이젠 그 말에서 아무런 울림도 들을 수 없지만, 한국어의 연금술사가 있었다면 미당이 바로 그 사람이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