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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

등록일 2026-04-13 작성자 관리자 조회 663

 

 나의 시

 

  어느 해 봄이던가, 머언 옛날입니다.
  나는 어느 친척의 부인을 모시고 성안 동백꽃나무 그늘에 와 있었습니다.
  부인은 그 호화로운 꽃들을 피운 하늘의 부분이 어딘가를 아시기나 하는 듯이 앉어 계시고, 나는 풀밭 위에 흥근한 낙화가 안씨러워 줏어 모아서는 부인의 펼쳐든 치마폭에 갖다 놓았습니다.
  쉬임 없이 그 짓을 되풀이하였습니다.

  그 뒤 나는 연년年年히 서정시를 썼습니다만 그것은 모두가 그때 그 꽃들을 줏어다가 디리던— 그 마음과 별로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제 웬일인지 나는 이것을 받어 줄 이가 땅 위엔 아무도 없음을 봅니다.
  내가 줏어 모은 꽃들은 제절로 내 손에서 땅 위에 떨어져 구을르고
  또 그런 마음으로밖에는 나는 내 시를 쓸 수가 없습니다.

-서정주시선(1956) 수록

 

‘시로 쓰는 시론’을 좋아합니다. 담백한 제목의 「나의 시」는 어느 해 봄을 회상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눈부신 순간을 잡아놓을 수 없듯이, 아름다운 꽃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요. 이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 떨어진 꽃을 주워 모아 소중한 사람의 치마폭에 갖다 놓는 것 외에 다른 도리는 없는 것이지요.

그 풍경만으로 시이지만, 꽃을 갈무리하는 마음 없이는 시를 쓸 수가 없습니다. 만개한 꽂을 감상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떨어진 꽃을 헤아리는 마음은 드물지 않을까요. 그런 마음으로밖에는 시를 쓸 수 없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씁니다. 그렇게 태어난 시를 누군가는 반드시 읽고 듣습니다. 세상에는 안 보이는 지음知音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꽃을 갈무리하는 마음과 그 마음을 포용할 수 있는 또 다른 마음과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좋은 귀신의 힘"으로 날마다 새로운 시가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요.

이은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