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연구소
Dongguk University
낮잠
묘법연화경 속에
내 까마득 그 뜻을 잊어 먹은 글자가 하나.
무교동 왕대폿집으로 가서
팁을 오백 원씩이나 주어도
도무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나는 글자가 하나.
나리는 이슬비에
자라는 보리밭에
기왕이면 비 열 끗짜리 속의 쟁끼나 한 마리
여기 그냥 그려 두고
낮잠이나 들까나.
-『떠돌이의 시』(1976) 수록
※
이 시는 뜻하는 바가 모호하여 해석이 어렵지만 미당시 가운데 매력적인 명편의 하나다. 시인은 지금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어떤 문제에 봉착해 있다. 다만 그 문제는 불경 중에서도 가장 부처님의 가르침이 잘 나타나 있다는 묘법연화경 속의 한 글자를 잊어버린 것에 비유된다.
그 중요한 문제가 풀리지 않아서 시인은 술집을 찾아가 술을 마셔보기도 한다. 비 오는 날에도 생각해 보고, 보리밭이 있는 들판을 거닐면서도 생각해 본다. 그러는 가운데 근심은 이슬비처럼 내리고 번민은 보리밭처럼 자란다. 답답한 시인은 화투로 점을 쳐보다가 시시한 비 열 끗짜리가 나오자 화투 놀음도 작파하고 낮잠이나 들고자 한다.
이 시는 묘법연화경이라는 높고 어려운 말로 시작해서 낮잠이라는 낮고 쉬운 말로 끝난다. 묘법연화경의 비의秘儀도, 삶의 문제도 어차피 완벽하게 풀리는 것이 아니며, 너무 끝까지 해답을 추구하려는 노력은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비록 답을 얻지 못했어도 할 만큼 했으면 그만 포기하는 것이 어쩔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알 수 없는 일이 가득한 이 인생살이 속에서 어쩌면 더 바람직한 태도일 수도 있음을 이 시는 암시한다.
이남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