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연구소
Dongguk University
신록
어이할꺼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 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천지엔 이제 꽃잎이 지고
새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 한번 나–ㄹ 에워싸는데
못 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허며
붉은 꽃잎은 떨어져 나려
펄펄펄 펄펄펄 떨어져 나려
신라 가시내의 숨결과 같은
신라 가시내의 머리털 같은
풀밭에 바람 속에 떨어져 나려
올해도 내 앞에 흩날리는데
부르르 떨며 흩날리는데……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
-『서정주시선』(1956) 수록
※
제목은 「신록」이지만 이 시의 전면에 두드러지게 형상화된 것은 꽃잎이 떨어져 흩날리는 장면이다. 시간의 전변轉變에 대한 안타까움이 반복된다는 것은 시인의 내면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갈망과 지향이 담겨 있음을 의미한다. 그가 지킬 수 있는 어떤 것은 ‘사랑의 감정’이다.
시인은 “남 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라고 탄식하듯 고백한다. 미당의 자서전을 보면 짝사랑의 기록이 많이 나오는데, 20대 이래 지속되어 온 “연정의 지랄병”이라고 그는 표현했다. 꾀꼬리처럼 자연스럽게 울려 나오는 사랑이 아니라 나만이 간직해야 할 비밀의 사랑, 드러나면 죽고 감추어야 꽃이 되는 그런 “기찬 사랑” 말이다.
「푸르른 날」도 그렇지만 이 시도 낭송을 잘하면 시의 묘미가 더욱 생생하게 살아난다. “어이할꺼나”라는 첫 시행으로 호기심을 일으키고, 그 후에 전개되는 운율의 파노라마는 소리와 의미가 긴밀하게 호응하여 울려내는 아름다운 선율을 창조한다. 음성 구조와 의미 구조가 이렇게 절묘하게 호응을 이룬 시를 한국시사는 그렇게 많이 갖고 있지 않다.
이숭원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