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연구소
Dongguk University
춘궁
보름을 굶은 아이가
산 한 개로 낯을 가리고
바위에 앉아서
너무 높은 나무의 꽃을
밥상을 받은 듯 보고 웃으면
보름을 더 굶은 아이는
산 두 개로 낯을 가리고
그 소식을
구름 끝 바람에서
겸상한 양 듣고 웃고
또 보름을 더 굶은 아이는
산 세 개로 낯을 가리고
그 소식의 소식을 알아들었는가
인제는 다 먹고 난 아이처럼
부시시 일어서 가며 피식히 웃는다.
-『서정주문학전집』(1972) 수록
※
보름 굶을 때마다 산 그림자가 하나씩 깊어집니다. 보릿고개가 태산보다 높다는 말, 생생합니다. 먹을수록 ‘허천병’을 부르는 진달래꽃 박태기꽃 찔레순 삘기……, 산 하나씩을 훑어 먹어가며 보름을 거듭 굶을수록 꿈속 상다리는 휘어집니다. 몽상의 밥상, 초월의 밥상! 이쯤 되면 굶주림도 정녕 남루에 지나지 않겠습니다. 굶을수록 거듭 깊어지는 굶주림의 내공. 굶주림의 경지!
정끝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