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연구소
Dongguk University
무등을 보며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내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 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엔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울쳐 휘여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어라
지어미는 지아비를 물끄럼히 우러러보고
지아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풀 쑥굴헝에 뇌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靑苔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 무등無等 : 호남 광주의 산 이름.
-『서정주시선』(1956)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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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의 참상을 목도하고 자신을 포함한 많은 사람의 굶주림을 체험하면서 시인의 마음은 착잡하였을 것이다. 그에게 현실 문제를 해결할 힘이 있었다면 고통스러운 현실을 변혁할 수 있는 방책을 모색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정치가도 경세가도 아닌 적수공권赤手空拳 백수의 시인일 뿐이었다.
현실적으로 가난과 고통을 해결할 방도가 없을 때에는, 마음의 영역에 의존하여 내면적 순결성이라도 유지하는 것이 차선의 방책이 된다. 바로 이것이 이 시의 기본 성격이며, 정신적 가치의 실상이기도 하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내지 않는다”는 이 시의 첫 행은 우리 시의 경구驚句로 남을 구절이다.
이숭원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