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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여름밤 별하늘 밑을 아버지 등에 업히어서

등록일 2026-08-31 작성자 관리자 조회 630

 

  맑은 여름밤 별하늘 밑을 아버지 등에 업히어서

 

  내 아버지는 객지에 나가 벌이를 하노라고
  오랜만에만 우리한테로 오셨었지.
  그래선 나를 업고 다니셨었지.
  어느 맑은 여름밤에는
  내가 외할머니네 집에 가서
  외할머니의 옛날이얘기에 파묻혀 있는 것을
  찾어와서 등에다 둘쳐업고
  깨끗하겐 긴긴 돌개울물을
  두 발로 출렁거려 소리를 내며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고만 있었지.
  새로 핀 흰 접시꽃같이 반가운,
  아니 멀리서 온 일갓집 형들같이 반가운
  하늘의 별들은 내 뺨에 그들의 뺨을
  연거푸 연거푸 갖다 대고만 있었지.
  추상抽象이라고는 전혀 없는
  이것이 이때의 내 그뜩한 시간이었지.

 

  (1993. 2. 10. 서울)

   -늙은 떠돌이의 시(1993) 수록

 

여름밤의 아름다운 추억이다. 외할머니는 이야기 할머니. 구연동화의 선수이시고 한글로 된 수많은 이야기책을 통으로 외워서 손자한테 들려주시는 분이다. 미당이 달리 대시인이 되었겠나. 어린 시절의 감수성이 대시인의 너른 토대가 된다. 할머니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세계에서 노닐다가 아버지 등에 업혀가며 자연을 느끼는 소년. 돌개울물 철벙철벙 건너는 소리 들린다. 그 여름밤에 뺨은 또 왜 간지러운지 몰라. 흰 접시꽃 같은 밤하늘의 별들이 아버지 등에 업혀가는 어린 소년의 뺨에 그들의 뺨을 갖다 댄단다.

윤재웅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