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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아미타불의 내 햇살

등록일 2026-09-07 작성자 관리자 조회 644

 

   도로아미타불의 내 햇살

 

   아내 손톱
   말쑥이 깎어 주고,
   난초
   물 주고 나서,

   무심코
   눈 주어 보는
   초가을날의
   감 익는 햇살이여.

   도로아미타불의
   도로아미타불의
   그뜩이 빛나는
   내 햇살이여.

   -80소년 떠돌이의 시(1997) 수록

 

나는 이 시를 중얼거릴 때마다 그게 시인의 삶이 아닐까 하는 허방에 빠지곤 한다. 아내의 손톱을 이쁘게 깎아 주고, 난초의 물을 열심히 갈아 주면서도 뗄 수 없는, 혹은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 도로아미타불의 삶, 결코 수행자처럼 나무아미타불이 될 수 없는 삶.

나는 여기에서 선사禪師의 삶과 시인의 삶이 갈라진다고 생각한다. 시인의 삶이 도로아미타불을 지향한다면, 선사의 삶은 나무아미타불의 삶을 지향한다. 시인의 삶은 껴안으려 하고, 선사의 삶은 초월하려 한다. 자꾸만 뒤돌아보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삶이 시인의 삶이라면, 앞으로 나아가면서 지나온 길을 지워버리려는 삶이 선사의 삶이다. 그것이 도로아미타불과 나무아미타불의 차이가 아닐까.

미당 선생이 한때 절 생활을 했고, 불교에 심취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불교에 기대면서도, 불교를 비껴간 삶. 도로아미타불을 독경하며 나무아미타불을 극복한 그만의 삶과 시에 대해 나는 언젠가 한 편의 긴 글을 쓰고 싶다.

이홍섭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