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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나무 밑 여자들

등록일 2026-09-14 작성자 관리자 조회 607

 

   당산나무 밑 여자들

 

   질마재 당산나무 밑 여자들은 처녀 때도 새각시 때도 한창 장년에도 연애는 절대로 하지 않지만 나이 한 오십쯤 되어 인제 마악 늙으려 할 때면 연애를 아조 썩 잘한다는 이얘깁니다. 처녀 때는 친정부모 하자는 대로, 시집가선 시부모가 하자는 대로, 그다음엔 또 남편이 하자는 대로, 진일 마른일 다 해내노라고 겨를이 영 없어서 그리 된 일일런지요? 남편보단도 그네들은 응뎅이도 훨씬 더 세어서, 사십에서 오십 사이에는 남편들은 거이가 다 뇌점으로 먼저 저승에 드시고, 비로소 한가해 오금을 펴면서 그네들은 연애를 시작한다 합니다. 박푸접이네도 김서운니네도 그건 두루 다 그렇지 않느냐구요. 인제는 방을 하나 왼통 맡아서 어른 노릇을 하며 동백기름도 한번 마음껏 발라 보고, 분세수도 해 보고, 김서운니네는 나이는 올해 쉬흔하나지만 이 세상에 나서 처음으로 이뻐졌는데, 이른 새벽 그네 방에서 숨어 나오는 사내를 보면 새빨간 코피를 흘리기도 하드라구요. 집 뒤 당산의 무성한 암느티나무 나이는 올해 칠백 살, 그 힘이 뻗쳐서 그런다는 것이여요.

   -떠돌이의 시(1976) 수록

 

미당 선생의 손에서는 우리 일상생활의 무엇이든지 그대로 시가 되어 버린다. 매체媒體를 손끝에 익히고 익혀 완전히 자신의 일부를 만들어 버리는 장인의 솜씨는 그의 우리 현실에 대한 깊은 관심에도 연결되어 있는 일이다. 하여튼 가장 비근卑近한 것의 시화詩化, 사는 대로의 삶의 시화는 『질마재 신화』(1975)를 전후해 특히 두드러진다.

『질마재 신화』에 나오는 여러 하층민들의 이야기들은 사회적으로 심리적으로 억압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소망도 언제 어떻게 해선가 누를 수 없는 불길처럼 실현되기 마련이라는 우화를 많이 담고 있다.

이 시는 사람의 정욕은 근원적 생명 충동의 어쩔 수 없는 실현이라는 점에서 당산나무의 무성함과 똑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소망, 특히 성적인 욕구는 그대로 자연 세력이라는 생각은 미당 선생의 시의 어디에나 배어 있는 것 같다.

김우창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