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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등록일 2026-09-21 작성자 관리자 조회 66

 

   신발

 

   나보고 명절날 신으라고 아버지가 사다 주신 내 신발을 나는 먼 바다로 흘러내리는 개울물에서 장난하고 놀다가 그만 떠내려 보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마 내 이 신발은 벌써 변산 콧등 밑의 개 안을 벗어나서 이 세상의 온갖 바닷가를 내 대신 굽이치며 놀아다니고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어서 그것 대신의 신발을 또 한 켤레 사다가 신겨 주시긴 했습니다만,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대용품일 뿐, 그 대용품을 신고 명절을 맞이해야 했었습니다.
   그래, 내가 스스로 내 신발을 사 신게 된 뒤에도 예순이 다 된 지금까지 나는 아직 대용품으로 신발을 사 신는 습관을 고치지 못한 그대로 있습니다.

   -질마재 신화(1975) 수록

 

미당의 뛰어난 많고 많은 시들 중에서도 이 시를 주목하는 까닭은 시에 대한 신앙에 가까운 그만의 자의식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순결한 맨발에 처음 신겨진 명절날의 그 신발이야말로 그가 꿈꾸던 시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처음 신은 신발이 먼 바다로 나가 ‘나’ 대신 ‘놀아다니는’ 것을 천여 편의 시로 표현한 미당. ‘내’가 있었던 곳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마음은 그 뒤 성년이 되고 노년이 되어 일가를 이뤘을 때 함부로 안주할 수 없게 만들었을 것이다. 미당은 미련한 소처럼 고지식하게 시를 썼다고 고백한 바 있다. 「신발」은 이러한 시인의 원적지가 어디에 있는가를 일러주는 시이다.

박형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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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 땐가. 아홉 살 땐가. 한식 무렵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서울을 갔다 오시면서 가죽에 분홍과 초록으로 수놓은 꽃당혜를 한 켤레 사다 주시어, 맑은 날은 가끔 왕골 꽃신 대신 그걸 신고 다녔었는데, 여름이 와 쏘내기 뒤 무지개 떴던 날, 엄마 몰래 이걸 꺼내 신고 진 데를 밟고 개울로 내려가서 또래들과 같이 목욕을 하며 가지고 놀다가 그만 한 짝을 장마 뒤에 부푼 물살에 떠내려 보내고 만 것이다.

하여, 이것도 실이 잘리어 동으로 간 연마냥 멎는 곳 모를 모양으로 항시 밀리고 흘러가는 모양으로만 내 속에 있다. 떡갈나무, 이깔나무, 머루, 다래, 곰취, 더덕, 창출―소요산의 풀과 나무를 씻어 간 그 질마재 물하고 시방도 같이 짝해서 다니는지. 벌써 헤어져 다니는지.

서정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