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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채기

등록일 2026-09-28 작성자 관리자 조회 710

 

  재채기

 

  어디서
  누가
  내 말을 하나?

  가을 푸른 날
  미닫이에 와 닿는 바람에
  날씨 보러 뜰에 내리다 쏟히는 재채기

  어디서
  누가
  내 말을 하나?

  어디서 누가 내 말을 하여
  어늬 꽃이 알아듣고 전해 보냈나?

  문득 우러른 서산西山 허리엔
  구름 개여 놋낱으로 쪼이는 양지.
  옛사랑 물결 짓던
  그네의 흔적.

  어디서
  누가
  내 말을 하나?

  어디서 누가 내 말을 하여
  어늬 소가 알아듣고 전해 보냈나?

   -『동천』(1968) 수록

 

※

‘누군지가 내 얘기를 하면 귀가 가렵다’와 마찬가지의 속신俗信이 이 시에 있다. ‘남이 내 얘기를 하면 재채기가 난다’는 속신은 이 시에서 쉽게 이끌어낼 수가 있다.

이 시에서는 바람, 꽃, 양지, 그네, 소 등이 하나의 인연을 갖고 있다. 재채기가 여기 있는 나와 눈에 보이지 않는 남을 엮는 우주적 인연 속에 끼여들게 일깨우는 것이다. 재채기의 속신은 여기와 보이지 않는 저기 사이의 공간을 넘어서고, 지금과 사라진 옛 기억의 사이를 가로지르며 시간을 넘어서고 있다.

이 시에서 속신은 단순히 소재가 아니다. 그것은 구성 원리다. 대립의 통합이 있는 아니마 문디, 그것은 미당의 시 세계다.

김열규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