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연구소
Dongguk University
자화상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었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었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우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트린
병든 숫개마냥 헐떡어리며 나는 왔다.
* 이 작품은 작자가 23세 되던 1937년 중추仲秋에 지은 것이다.
-『화사집』(1941)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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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개인사적인 ‘이야기’에 지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시는 우리 민족이 살아온 보편적 삶을 함축적인 언어로 그린 한 장의 흑백 사진인 동시에 미당시의 심오한 사찰로 드는 초입에 우뚝 세운 일주문이다.
첫 행을 읽는 순간, 나는 그만 뒤통수를 둔중한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스물셋이면 흔히 온갖 허세나 부리고 자기의 치부를 가리기에 급급한 나이다. 한데 이렇듯 부끄러운 가문의 내력과 남루를 적나라하게 발설하다니, 이러한 진술도 시가 된다니, 당시의 신예 시인치고는 매우 충격적인 언술이며 파격이 아닐 수 없었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는 선언 속에는 얼마나 다양하고 단호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가. 자신을 키운 자양을 일러 ‘바람’으로 치환하는 비유도 절묘하려니와 ‘팔할’이라는 구체적인 수치 설정도 미당이 아니고는 감히 흉내 내기 어려운 시적 요소가 된다. 관념적인 수사로 빠지기 쉬운 ‘바람’이 내포하는 시적 의미는 우리의 현대 시사에 유례를 찾기 어려운 가장 탁월한 심상이 아닐 수 없다.
임영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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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라는 바람 선언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할머니도 외할아버지도 나와 동일시를 이룰 수 없는 부정성의 담론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는 죄의식 속에는 진주조개 속에 상처가 있듯이 세상을 거부한 상처가 있다. 내 눈에서 죄인을,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는 타인은 나의 자화상이자 동시에 타화상이 된다. 그러나 시인은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라는 비장한 초연함을 노래한다.
스물세 살 식민지 청년 시인의 순수한 리비도와 부정적 충동의 현대성. 충분치 않은 삶이지만 충분한 삶. 고통스런 죄가 많지만 아름다운 죄인. 찬란한 광채가 쏟아지는 대낮 속으로 리비도의 개는 죄 많고 숭고한 예술을 만든다. 참으로 사랑하다가 숨이 끊어질 듯 아름다운 시다.
김승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