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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곡

등록일 2026-11-02 작성자 관리자 조회 248

 

  행진곡

 

  잔치는 끝났드라.
  마지막 앉어서 국밥들을 마시고,
  빠알간 불 사루고,
  재를 남기고,

  포장을 걷으면 저무는 하눌
  일어서서 주인에게 인사를 하자.

  결국은 조끔씩 취해 가지고
  우리 모두 다 돌아가는 사람들.

  목아지여
  목아지여
  목아지여
  목아지여

  멀리 서 있는 바닷물에선
  난타하여 떨어지는 나의 종소리.

   -『귀촉도』(1948) 수록

 

※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이 한 편의 노래 속엔 벌 받는 형장에서 그 수형을 끝내고 돌아가려는 서정주의 기막히고 서글픈 모습이 숨어 있다. 그 몸서리치는 형벌의 잔치를 끝내고 형장의 포장을 걷고 나왔을 때, 이미 시간은 흘러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무섭고 긴 형벌을 받은 그가 돌아갈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결국 그가 돌아갈 곳은 모가지만 남은, 산산이 부서진 자기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행진곡」 이후의 그의 모든 노력과 임무는 모가지만 남은 자기를 다시 발견하는 데 있었다. 『화사집』의 몸부림치는 깊은 심연에 그대로 죽어 버릴 줄 알았던 서정주와 같은 수형의 시인이 이렇게 새로운 호흡과 열모와 의욕을 통하여 자기를 다시 일어나게 했다는 것은 분명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서정주 이상으로 형벌을 받았던 보들레르나 랭보와 같은, 전 세계를 향하여 그 명망이 찬란했던 시인들의 임종 속에서도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났기 때문이다.

「무등을 보며」, 「추천사」, 「광화문」, 「상리과원」 등의 놀라운 원숙을 통하여 이룬 그의 정신의 새로운 질서는 동양의 하늘 아래에서 눈부시게 성공해 있었던 것이다. 한 시인이 눈부시게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기까지에는 그렇게도 극심한 수난이 있어야만 했던 것일까.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솥작새는 그렇게” 울어야 했던 것처럼.

조연현 문학평론가